인간을 사랑한 철학자 몽테뉴, 에릭 호퍼 그리고 우명

에릭 호퍼 북 어워드(Eric Hoffer Book Award)에서는 2014 몽테뉴 메달 수상작으로 우명 선생의 <진짜가 되는 곳이 진짜다> 영역판 ‘Where You Become True Is The Place Of Truth’을 선정했다. 몽테뉴 메달은 해마다 ‘인류의 정신적 진보와 깨달음에 크게 기여한 책’ 단 2권에 수여하는, 권위 있는 도서상으로, 생전에 몽테뉴를 가장 존경했던 에릭 호퍼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20세기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떠돌이 철학자 에릭 호퍼는 왜 16세기의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를 가장 존경했을까. 에릭 호퍼 어워드에서는 왜 한국의 우명 선생에게 몽테뉴 메달을 수여했을까. 몽테뉴, 에릭 호퍼, 우명. 이들의 철학과 사상은 과연 어느 지점에 맞닿아 있는 것일까.

 
 

 

‘나는 무엇을 아는가’ 모럴리스트 몽테뉴, 자신을 연구하다

<수상록>으로 잘 알려진 미셸 에켐 드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 – 1592)는 프랑스의 철학자, 사상가, 수필가이다.

수상록의 원제는 ‘에세(Les Essais)’. 이것은 훗날 ‘에세이’라는 문학 장르의 원조가 된다. ‘에세’란 실험 혹은 시도를 뜻한다. 그리고 몽테뉴가 실험하고 시도했던 연구 대상은 바로 자신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더욱 깊이 연구한다. 이것이 바로 나의 철학이고 물리학이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 나는 이것을 나의 사색과 판단의 표어로 삼았다.”

 

몽테뉴는 ‘나는 무엇을 아는가’를 최대의 명제로 삼았다. 그 경험과 성찰의 기록은 20년에 걸쳐 총 3권의 수상록으로 남게 되고, 프랑스 문학사는 그를 모럴리스트(moralist)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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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가 살았던 16세기는 유럽 역사상 손꼽히는 암흑기였다. 종교 개혁의 후폭풍으로 가톨릭과 신교가 대립하고, 신교는 다시 칼뱅파와 루터파로 갈리며 증오와 갈등이 치닫는 시기였다.
‘어떻게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나 자신으로 살 것인가?’를 고민한 몽테뉴는 그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다. 중용과 관용을 지지했던 그는 오직 자신의 세계, 종교와 학문, 자연과 문명, 권력과 평등을 논하고, 인간의 내면에 귀 기울였다.

 

“사람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가장 그릇된 사상을 가꾸게 되는 주요한 요인은 자기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데서 온다고 본다.”

“습관은 제2의 천성으로서 제1의 천성에 비해 결코 약한 것이 아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한 자는 인간이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확언할 만큼 충분하게 만물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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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는 철학자라면 일부러 고독을 자처하여 조용히 명상하고 사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루도 평화로운 날이 없었다고 할 만큼 종교 전쟁과 전염병의 참화 속에 가족과 친구를 잃어야 했던 몽테뉴는, 스스로도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되면서 죽음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된다.

“죽음이 어디서 우리를 기다리는지 알 수 없으니, 어디서든 죽음을 기다리자.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하는 것은 자유에 대해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생명의 상실이 나쁜 것만은 아님을 깨달은 사람에게 인생에서 나쁜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죽는 법을 알면 모든 예속과 속박에서 벗어난다.”

“나는 진정 독서와 명상에만 몰두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내 정신은 질서도 상호 연관성도 없이, 수많은 망상이나 기괴한 괴물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느낌이었다”고 고백한 몽테뉴.

그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고자 <수상록>을 쓰기 시작한 그는 자신의 상념을 정리하고, 경험을 관찰하며 ‘나는 무엇을 아는가’와 ‘죽음’에 대한 사유에 집중한다. 몽테뉴 사상의 정수 <수상록>은 한 인간이 어떻게 영적으로 진화하는가에 대한 기록이며, 모든 인간에 대한 애틋함이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 삶을 여행하다

“언어는 질문을 하기 위해 창안되었다. 대답은 투덜대거나 제스처로 할 수 있지만, 질문은 반드시 말로 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첫 질문을 던졌던 때부터다.”

떠돌이 노동자로서, 인생의 대부분을 길 위에서 살았던 에릭 호퍼가 스스로에게 던진 인생 질문은 ‘어디로 가는가’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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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호퍼(Eric Hoffer, 1902 – 1983)는 미국 뉴욕에서 가구제조공인 독일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7살 때 어머니가 그를 안고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실명을 하게 되고, 2년 뒤에는 어머니마저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다.

15살 되던 해 기적적으로 시력을 되찾게 된 그는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라 믿고, 다시 눈이 멀기 전에 책을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독서에 집착한다.

하지만 18살에 아버지마저 잃게 되자, 그는 로스앤젤레스로 떠나 노동자의 삶을 살게 된다.

막노동꾼, 웨이터, 행상, 사금채취공… 직업소개소를 통해 겨우겨우 일자리를 얻어 살아야 했던 고된 생활 속에서도 그는 독서를 그만두거나 책에 대한 애정을 잃지는 않는다. 하지만 매일매일의 노동에 지친 그는, 28살 때 자살을 시도하게 되는데, 그날을 에릭 호퍼는 이렇게 묘사한다.

“자살에 실패한 뒤 조그만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로스앤젤레스를 떠날 때 내 마음은 가벼웠다. 사방이 탁 트인 시골로 나왔을 때 나는 이제야 내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음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인생의 짐을 다 내려놓게 되었던 것일까. 그는 그때의 가벼움과 자유를 ‘집에 돌아왔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마치 다시 새로 태어난 듯 길을 나선다.

‘혼자 걸으니 가슴이 설레네 / 들판이 멀리 나아가 하늘과 만나고 / 산들이 꿈 같은 푸르름 속에 떠 있고 / 속삭이는 바람이 쏜살같이 달려가는 / 그곳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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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호퍼에게 철학은 일상이었다. 정규 교육은 한 번도 받지 못했지만 그에게는 노동자들을 만나고 대화하는 그 현장이 바로 인간 성찰의 시간이었다.

“나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자신의 불행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없었다. 거의 예외 없이 ‘나 외에 다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시작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이웃을 사랑한다. 우리는 자신을 대하는 만큼 남을 대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용납하는 것만큼 남을 용납하려 하며, 자신을 용서하는 것만큼 남을 용서한다.”

“자유란 어느 사람에게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하지만, 대부분에게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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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독서량과 현장 경험,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은 그로 하여금 위대한 사상가의 길을 걷게 한다. 그런 에릭 호퍼가 가장 존경한 철학자는 몽테뉴였다. 그는 <수상록>을 외울 정도로 수없이 읽었으며 노동자들에게 몽테뉴의 사상을 설명해주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인간의 본질을 연구해온 몽테뉴가 자신의 내면마저 꿰뚫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 에릭 호퍼는 자신의 회고록 <길 위의 철학자>에 몽테뉴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나는 그가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쓰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나의 깊은 속마음까지 알고 있었다.”

철학자라 불리기 훨씬 이전부터 노동자, 독서광, 삶의 여행자였던 에릭 호퍼.

그가 사회철학자라 불린 건 그 어떤 형식이나 가림 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하며 얻어낸 깊이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그가 가져온 평생의 화두는 인간 사회를 더한층 성장시키는 사상으로 정립되었다.

‘나는 진짜인가’ 인간 완성의 철학자 우명, 방법을 찾아내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 두 가지 명제는 몽테뉴와 에릭 호퍼만의 과제는 아니었다. 인지하며 살아가든 그렇지 못하든 철학자라 불리든 그렇지 않든 우리 인류 모두의 근본적 의문이자, 숙제였던 것이다.

우명 선생은 그 답을 찾으려면 ‘진짜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그동안 답을 찾지 못한 것은 참인 진짜로 살지 못하고 자기가 만들어낸 가짜로 불완전하게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상은 이미 완전한 세상이나 사람이 가짜인 자기 마음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에 완전한 세상을 보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진짜가 되어 진짜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진짜란 참이고 참이란 진리이다. 가짜인 나를 다 버리면 진리만 남아 그 진리가 내가 되니, 이것이 인간 완성이다.”

“지금은 가짜를 버리는 방법을 통해 누구나 진리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진리가 되어야 한다.

‘사람은 왜 태어나 왜 살고 어디로 가는가’는 우명 선생의 오랜 화두였다. 하지만 그 답을 찾기 위해 종교에 귀의하거나 홀로 산속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는 우리처럼 생활인으로 살며 구도의 길을 걸었다.

몽테뉴처럼 자기 내면을 성찰했으며, 에릭 호퍼처럼 삶의 현장을 단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런 그가 발견한 인간 완성의 방법은, 영적 진화를 과제로 삼고 고민해온 사상가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대안이 되어주었다.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기를 완전히 버려야 한다고 우명 선생은 말한다. 자기를 버림으로써 사람들은 진리가 되고, 그럼으로써 완전함 또는 천국에 이를 수 있다. 이 가르침을 사실로 받아들이든지 아니든지 또 인간의 생각 속에 갇혀 계속 살든지 아니든지 간에, 우명 선생이 창시한 수련 방법이 인류의 거짓된 복잡성을 벗겨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고 누구에게라도 영적인 진화를 향한 걸음에 도움이 될 것이다.”

– <The US Review of Books> ‘진짜가 되는 곳이 진짜다’ 서평 중

우명이 말하는 ‘자기를 완전히 버려야만 완전해진다’는 것은, 몽테뉴와 에릭 호퍼가 죽음을 바라보며 깨달았던 자유, 마치 집에 돌아온 것 같다고 표현한 것과 상통한다. 자기를 버리는 순간 찾게 되는 것은 가짜인 ‘자기’라는 세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진짜세상, 완전한 본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대 사상가들이 갈구하고 아는 것에 그쳤다면, 우명은 실제 그렇게 사는 방법을 발견했으니, 몽테뉴와 에릭 호퍼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거 같다.

‘나는 내가 무엇을 아는지, 이제 알게 되었다. 고통 없는 영원한 행복은 원래 내 안에 있었다.’

‘더 이상 나는 어디로 가는가 헤맬 필요가 없다. 목적지를 정확히 아는 방법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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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마음수련 명상 방법을 창시한 이래, 쉼 없이 전 세계를 다니며 강연과 집필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우명 선생.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오직 사람들이 인간마음의 고통과 짐에서 벗어나 모두가 대자유인 참마음으로 다시 나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 우명

인간은 언제까지 불완전해야 하는가. 언제까지 불안과 허무, 속박에 갇혀 살아야 하는가.

그 끝을 내고 싶었던 세 명의 철학자 몽테뉴, 에릭 호퍼, 우명. 이 세 사람이 맞닿은 정점은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 인용문구 출처 : <수상록>(몽테뉴), <길 위의 철학자>(에릭 호퍼), <진짜가 되는 곳이 진짜다>(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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